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(문단 편집) === 1960년대~1970년대 === ||[youtube(7ClDFmFmr0k, width=400, height=210)]||[youtube(OIGTA8rXEx0, width=400, height=210)]|| ||스크랴빈, 에튀드 Op.8 No. 12 (rec. 1968)||스카를라티, 소나타 K.466 (rec. 1964)|| ||[youtube(GeIkc573yJg, width=400, height=210)]||[youtube(9p1qK57H_6k, width=400, height=210)]|| ||스크랴빈, 시곡 Op.32 No.1 (rec. 1965)||리스트, 오베르만의 골짜기 (rec. 1966)|| ||[youtube(18620H_z8Uk, width=400, height=210)]||[youtube(yIM0FM0cHb8, width=400, height=210)]|| ||쇼팽, 발라드 1번 (rec. 1968)||라흐마니노프, 에튀드 Op.39 No.5 (rec. 1975)|| 1965년 카네기 홀 복귀를 이후로 그는 두 번째 전성기를 맞는다. 특히 복귀 후 잠시 콘서트 휴식이 있기 전인 1969년까지는 매우 인상적인데, 이때 쇼팽 발라드 1번, 스크랴빈 에튀드 8-12,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등의 전설적인 녹음을 한꺼번에 남기고 콘서트 자체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. 아직 잃지 않은 젊은 시절의 테크닉과, 12년의 공백 사이에 매우 성장한 음악적 감각의 결합, 그리고 [[장시간 음반|LP]]의 발명으로 인한 고음질의 녹음기술의 시너지가 엄청나다. 특히 여기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하는 다이내믹 폭과 음 자체에 대한 조절[* 음색을 자유자재로 바꿈과 더불어, 손 3개가 필요할 다성부의 패시지를 각각 분리해내면서도 서로 융합되게 연주하는 것 등]은 말년까지 이어지는 그의 음악능력의 초석이 된다. 1970년대는 약간의 과도기적인 시기이다. 그의 전체적인 음악성향의 변화를 살펴보면, 60년대에서 80년대로 거쳐가며 레퍼토리와 연주 스타일이 상당히 변했는데, 70년대의 연주는 그 사이에 껴있어 다소 혼란한 느낌을 준다. 이 시기의 그의 해석은 과장된 셈여림 등의 신경질적인 면이 상당히 돋보이곤 한다. 이는 곡의 자유스러움이 결여되고 불안정감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한데, 너무나 자세히 곡을 쪼개놓아서 전체적인 흐름 자체를 절단낸다는 것이다. 이 시기때 연주된 그의 [[프레데리크 쇼팽|쇼팽]] 레퍼토리를 들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. 한편 레퍼토리 자체는 60년대와 비슷한데, 같은 곡의 연주에 있어서 속도와 테크닉은 60년대보다 다소 뒤쳐지지만 새로운 해석의 방향을 갖고 있다. 전체적으로 보면 이 시기의 연주는 악마적인 저음과 함께 과격하면서도 신경질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것이 특징으로, 1979년에 몇 번 연주한 리스트 메피스토 왈츠의 연주를 들어보면 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.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39-5의 1962년과 1975년 연주를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. 전자는 물 흐르는듯한 깔끔함이라면 후자는 다소 걸쭉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음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